도서출판 마티는 2005년 설립되었습니다. 인문학을 중심으로 사회, 예술, 건축 등의 책을 펴냅니다.

푸르트뱅글러, 레니 리펜슈탈, 알베르트 슈페어 등 나치와 협력한 예술가의 삶을 통해 제3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파우스트의 거래’ 시리즈, 『말년의 양식』 등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 유산을 소개하는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 2010년대 중반 한국의 집짓기 신드롬을 이끈 『집짓기 바이블』을 비롯한 ‘좋은 집 시리즈’ 등의 책을 출간해왔습니다.

책과 글의 위기가 이야기 되는 지금, 도서출판 마티는 종이책의 가치와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궁리하는 동시에 디지털 매체로 종이책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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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
익명의 여인 지음 / 염정용 옮김
정가 18,000원
출간일 2018년 11월 22일
분야 역사
ISBN 9791186000748
제본방식 페이퍼백
쪽수 344쪽
크기 145*210mm
무게 524g
원제: Eine Frau in Berlin: Tagebuchaufzeichnungen Vom 20.April – 22. Juni 1945
책 소개

2차 세계 대전이 끝을 향해가던 1945년 봄,

여자만 남은 도시가 된 베를린

한 여자가 이때의 베를린을 일기로 남기다

전쟁이 발발한 1939년 당시 베를린의 인구는 432만 명이었다. 전쟁이 계속된 6년간 피란과 참전으로 인구는 계속 줄어들었고, 1945년에는 270만 명의 민간인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중 200만 명이 여성이었다. 베를린은 ‘여자만 남은 도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여자가 이때의 베를린을 일기로 남겼다. 베를린 동쪽에서 피어오르는 화염이 눈에 보일 만큼 동부전선이 성큼 다가온 1945년 4월 20일부터 러시아군이 도시를 점령하고 연합군이 베를린을 두고 협상하기 전인 6월 22일까지의 기록이었다.

일기에 따르면, 저자는 “창백한 금발의 여자”이자 “출판사 직원”(20쪽)이다. 폭격으로 집을 잃은 후 전선으로 떠난 전 직장 동료의 다락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곳 책꽂이에서 노트를 발견하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전쟁터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이야기

4월 27일 금요일, 러시아군이 길모퉁이를 돌아 들어오기 시작한 날, “그 일”이라는 불분명하게 지칭된 사건이 처음으로 일기에 등장한다. 앞으로 계속될 8주의 기록에서 거의 매일 등장하는 “그 일”은 ‘강간’을 뜻한다.

여자들의 안부 인사는 이제 “당신은 몇 번이나…?”(200쪽)라는 질문으로 바뀌었고, 러시아 군인의 무차별한 성적 폭력을 비껴갈 수 있었던 여자는 거의 없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는 성폭력을 집단 경험으로 여긴다. 성폭력은 이제 사방천지에서 일어나며 심지어 협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181쪽). 그랬다. 독일 정부의 식량 배급이 끊기면서부터 먹을 것을 줄 수 있는 러시아 군인과 일부러 동침하는 여자들도 많았다. 저자 또한 반복되는 강간을 막으려 생존 전략을 짠다.(84쪽) 저자가 러시아 장교와 관계를 맺는 데 ‘성공’할 때면 저자의 동거인이 된 한 중년 여성(일기 속 ‘미망인’)은 은근히 그녀의 ‘몸값’을 계산하기도 한다.(236쪽, 281쪽)

2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군을 포함한 연합군이 독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집단 강간은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후 조사에 따르면, 독일 전체에서 최대 100만 명의 여성이 강간을 당했으며, 베를린에서만 9만 5천 명에서 11만 명의 피해자를 낳았다. 이 일기는 ‘베를린 집단 강간 사건’의 일면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언이자 전쟁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한 기록이다.

 

전쟁이 망가뜨린 삶을 응시하다

저자는 자신을 돌보기 위해 글을 썼다고 고백하지만, 후방에 남겨진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냉정한 눈으로 관찰하고 세세하게 적고 있다.

혈연으로 묶인 가족은 의미가 없어지고 생존자 공동체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과정, 독일인끼리도 약탈을 서슴지 않을 때의 절망감,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다가도 문득 용기가 솟아 타인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기묘한 순간, 계속되는 굶주림과 먹을 것에 대한 강한 욕심, 강간으로 인한 임신에 대한 불안, 강제노역, 거짓 선전을 일삼는 정부를 향한 분노… 전쟁 전에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던 지인을 찾아 황량해진 거리를 걷고 또 걸어 결국 만났을 때의 희열. 평시에는 인간이 느낄 수 없었던 생소한 감정이 이 일기에 녹아 있다.

 

침략국 독일이 차마 꺼내놓을 수 없었던 아픔

독일인 피해자라는 복잡함

2차 세계 대전의 ‘독일인 피해자’라는 위치가 한 개인에게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 일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일 여성을 강간하려다 장교에게 제지당한 한 병사가 “독일 놈들은 우리 여자들을 어떻게 했나요?”라며 반발하는 것을 글쓴이는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독일군이 아이들을 찔러 죽이고, 아이의 발목을 잡고 머리를 벽에 내리쳐 박살 내버렸다”며 따지는 러시아 병사도 있었다. 그것은 ‘나치 친위대’의 소행일 것이며 자신들의 남편이 소속된 정규군은 그랬을 리 없다고 여자들은 강하게 부정한다. 하지만 글쓴이는 자신의 고통 앞에서, 그리고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언제나 한 발 물러나 현실을 직시한다. “지금 우리의 정복자들은 정규군이든 나치 친위대든 그저 ‘독일인’으로 간주할 것이며, 우리 모두에게 책임을 지울 것이다.” 글쓴이는 자신이 독일인임을 몇 번이고 되새긴다. 나치에 잠깐 가담했던 자신, 공산주의에 매료되었던 자신을 회고하며, 일개 개인이 짊어져야 할 역사의 무게를 받아들이려 애쓴다.

“모두가 유죄는 아니지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홀로코스트와 침략 전쟁을 반성하는 독일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이 일기를 쓴 여성과 같은 개개인의 성찰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위작 논란을 거쳐 비극의 증거로

이 일기는 처음에는 짧은 글, 약어, 암시, 단어, 단편적인 생각이 마구 뒤섞인 것이었다. 저자는 이를 1945년 7월에 타자로 옮겨 적으면서 표현을 다듬고 나중에 관찰하고 생각한 점을 보완하며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해서 회색의 군수 용지에 121쪽짜리 원고가 완성되었다. 종전 후 저자의 지인이었던 독일 작가 쿠르트 마렉(Kurt W. Marek)이 출간을 설득했고, 저자는 익명을 조건으로 수락한다. 그렇게 1954년 미국에서 A Woman in Berlin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되었고, 이후 8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하지만 전후의 상처를 보듬을 여력이 없었던 독일에서는 2002년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

그사이에 이 일기의 작성자가 마르타 힐러스(Marta Hillers)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는 전쟁 기간에 사진 기자로 일하면서 여러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50년대에 스위스인과 결혼해 이주한 후로는 공식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다. 2001년에 90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몇 년 전, 그녀는 1945년에 작성한 원고를 다시 검토하고 몇 가지 사소한 교정을 보았다. 《함락된 도시의 여자》는 마지막 교정본을 바탕으로 출간된 독일어판을 번역한 것이다.

 

여성의 목소리로 2차 세계 대전의 비어 있는 페이지를 채우다

어느 날 일기에 글쓴이는 “전쟁 이후 처음으로 내가 증인으로서 자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고 썼다. 역사의 증인이 되는 데에 무슨 자격이 필요할까. 나치 정권에 협력했던 고위 관료 중 유일하게 전범 재판에서 교수형을 면하고 회고록을 남긴 히틀러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나,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성실한 청년이었을 뿐이라고 말한 괴벨스의 비서 브룬힐데 폼젤 이상으로, 자신의 몸이 전쟁터가 되었던 익명의 여성들 또한 그 시대의 증인이다.

차례

독일어판 출판사 서문
1945년 4월 20일–1945년 6월 22일 일기
독일어판 출판사 후기
한국어판 출판사 후기
2차 세계 대전 1945년 주요 사건

지은이

익명의 여성

 

옮긴이

염정용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마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했으며, 서울대 강사 등을 거쳐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술꾼』, 『홀로 맞는 죽음』, 『뮌히하우젠 남작의 모험』, 『황태자의 첫사랑』 등 50여 권이 있다.